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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조롱인가 예술인가, 그는 왜 바나나를 붙였을까?
Maurizio Cattelan / Not Afraid of Love - Monnaie de Paris 그는 왜 예술을 조롱했는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은 현대미술계를 가장 강렬하게 뒤흔든 도발적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예술을 숭배하는 사회와 이를 소비하는 자본주의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작업이 어디까지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설치나 조각을 넘어 사회와 인간에 대한 유머, 풍자, 그리고 도발로 가득 차 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카텔란은 예술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전통적인 미술 교육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전개했다. 그는 전통적인 조각과 회화를 거부하고, 개념과 아이디어 중심의 작품을 통해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누구인가? 예술계의 반항아, 그리고 유쾌한 파괴자
카텔란은 스스로를 '실패한 아티스트'라고 칭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성공적인 현대미술가다. 전통과 권위를 부수는 태도로 주목받았으며, 작품 속에는 끊임없이 권력과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의 작업은 종종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종교, 정치, 경제, 예술 권력구조를 비틀어 풍자하는 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 뒤에 씁쓸함을 느끼게 만든다. 카텔란은 관객이 작품을 통해 불편함을 마주하게 하고, 스스로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왜 바나나를 벽에 붙였는가?
2019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선보인 작품 《Comedian》(코미디언)은 그의 예술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히 바나나 하나를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은 형태였다. 하지만 이 바나나는 12만 달러(한화 약 1억 4천만 원)에 판매되었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카텔란은 이 작업을 통해 예술 작품의 가치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바나나라는 일상적인 사물이 갤러리와 예술 시장이라는 컨텍스트 안에 들어서자 천문학적 가치로 변모했다. 그는 이 현상을 조롱하며, 예술 시장과 소비문화에 대한 냉소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표작 속으로: 유머와 충격, 그리고 불편한 진실
《Comedian》(2019)
카텔란이 바나나 하나를 덕트 테이프로 붙여놓은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관객 중 한 명이 이 바나나를 떼어내어 먹어버리는 퍼포먼스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의 가치는 실물 바나나가 아닌, 그 아이디어와 증명서에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Comedian》은 현대미술이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어디서' 보여주는가, 그리고 '누가' 인정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카텔란은 이 작품으로 예술가와 관객, 시장의 관계를 비판하며, 현대 예술 시스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농담으로 만들었다.
《Comedian》(2019) 《Him》(2001)
이 작품은 아돌프 히틀러를 아이의 모습으로 구현한 조각이다.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관객에게 강한 충격을 준다. 그는 절대 악으로 인식되는 존재조차도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재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복합성과 도덕적 모호성을 드러낸다.
《Him》은 폴란드의 한 유대인 게토 지역에 설치되기도 했으며, 그 장소성과 조각의 대비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카텔란은 악에 대한 관념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예술로 소환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과 직면하게 했다.
《America》(2016)
18캐럿 순금으로 제작된 실제 사용 가능한 변기 《America》는 풍자와 비판의 결정체다. 이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되어 관람객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제공되었다.
카텔란은 이 작품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비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금으로 된 변기는 극도의 사치와 허영을 상징하며, 관객은 그 위에 앉음으로써 이러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왜 계속 도망쳤는가?
카텔란은 예술계를 도발하며 동시에 자신도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몇 차례 은퇴를 선언했지만, 다시 돌아와 충격적인 작품을 발표하며 현대미술의 중심에 섰다. 그는 끊임없이 '도망가는' 태도를 유지하지만, 결국 그가 만든 질문과 문제의식은 계속해서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비판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기꺼이 수용하며, 그것이 곧 자신의 예술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내 작업은 진지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안에서 진지함을 찾게 된다."
Helplessness Novecento (1900), by Maurizio Cattelan (1997). Monnaie ❘ Quai de Conti Maurizio Cattelan / Not Afraid of Love - Monnaie de Paris 딥블루의 예술적 시선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그리고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그의 작품은 늘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대사회의 민낯과 인간의 허영이 자리 잡고 있다.
카텔란은 묻는다. 당신이 이 작품을 비웃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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